전통주택/불상및 탑의 종류

[스크랩] 화엄사오층석탑은 쌍둥이 탑?

시인의마을들 2006. 6. 9. 10:16
 

화엄사는 절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엄 도량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사찰을 자주 찾게 되지만 그 때마다 사찰이 놓인 위치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됩니다. 가람의 배치에 있어 사찰의 주불전이라 할 수 있는 대웅전이나 또는 사찰에서 주불전인 대웅전과 같은 중정의 역할을 하는 각황전이나 입구 격인 일주문 또는 금강문과는 약간의 사선을 이루고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엄사 일주문은 다른 사찰의 거대한 일주문에 비해 무척 소박한 느낌을 줍니다>

 

 화엄사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 -> 천왕문-> 보제루(普濟樓)를 통해야만 비로서 사찰의 공간에 들어서게 됩니다. 보제루까지 이르는 길은 직선상에 있지만 대웅전은 이 직선상의 우측에....그리고 각황전은 이런 진입경로의 직선상의 좌측에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보제루에 접어들면 정면과 좌측에 있는 계단 석축을 통하여 대웅전과 각황전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마당의 양쪽에 두 개의 오층 석탑이 놓여 있으며 이 탑을 화엄사 동서오층탑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석탑은 주불전인 금당 앞에 놓이게 마련이라 보제루 앞마당을 주 공간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보제루 앞마당의 탑이 서 있는 공간을 실은 사찰의 주 공간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대웅전은 대웅전대로 앞마당이 있어 주 공간을 이루고 있으며 각황전 또한 석등이 있는 공간을 주 공간으로 마당을 가지고 있어 보제루 앞마당은 화엄사의 부 공간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탑의 명칭을 동서탑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탑이 놓인 위치는 남동과 남서 방향입니다.

  <화엄사 보제루의 뒷 편 모습입니다. 전통 목조건축의 결구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화엄사 보제루의 기둥은 주춧돌 위에 그랭이질을 해서 세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찰의 주불전이 어디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겠지만 화엄사의 가람배치는 대웅전과 보제루...그리고 금강문 옆의 덕장전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 원래의 가람 배치로는 대웅전이 주불전의 기능을 가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탑의 위치를 보더라도 대웅전이 주불전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각황전이 국보 67호로 지정이 되어있고 대웅전은 보물 299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이런 지정은 건물이 갖는 가치에 대하여 국보와 보물로 나뉘게 된 것이며 건축 시기는 대웅전이 1636년으로 각황전이 건립된 시기인 1702년 보다 앞서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시 모두 불에 타 버려 그 이전의 가람배치는 알 수 없지만 건물이 있던 지역의 기단형태로 보아서는 창건 당시부터 2개의 건물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이렇게 금당(金堂)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 두 개인 사찰도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그러나 화엄종에서의 주불은 비로자나불로 이 불상이 안치된 대웅전을 화엄사의 주 불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국보 제 67호로 지정된 화엄사 각황전의 웅장한 모습>

 <각황전의 힘찬 현판 글씨는 숙종으로부터 제수를 받아 형조참판 이진휴(李震休)가 썼습니다>

 <주불전인 대웅전의 모습으로 정면 5칸의 작지 않은 규모지만 각황전의 위세에 많이  눌려 있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화엄사를 찾은 가족이 있습니다. 아이는 탑을 보며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탑이 두 개인데 쌍둥인가봐..." 그래...이 탑은 쌍둥이 탑이야"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정말로 쌍둥이 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 우리의 문화유산을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문화재를 깊이있게 살펴보기보다는 그저 관광삼아 지나치듯 쳐다보는 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화엄사의 두 탑은 쌍둥이 탑일까요?

 

 화엄사의 동서 두 개의 탑은 높이가 똑 같이 6.4m로 언뜻 보면 똑 같이 만들어진 쌍둥이탑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가 상당히 틀린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이 두 탑이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조성시기가 각기 다름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자칫 대웅전 앞에 일금당이탑식(一金堂二塔)으로 탑이 조성된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금당쌍탑의 건립은 9세기 후반에 들어 많이 건립이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탑으로는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 대구 동화사 금당암 삼층석탑, 장흥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김천 직지사 비로전앞 과 대웅전 앞 삼층석탑 등등의 탑으로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일금당쌍탑의 조성을 따라 두 개의 탑을 조성하였으나 이렇게 조성된 두 개의 탑은 양식적인 측면에서 쌍탑이 같은 양식으로 건립되었으며 상륜부등 극히 일부분에서 서로 다른 조형양식을 보이기도 하지만 화엄사의 동서삼층탑처럼 두 개의 탑에서 각기 다른 양식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먼저 1기의 탑이 세워졌고 나중에 나머지 1기의 탑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앞 삼층석탑>

 <직지사 비로전앞 삼층석탑은 대웅전앞 삼층석탑과 같은 양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더구나 두 탑을 각기 다른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는 이유는 보제루의 앞 마당에 놓인 2기의 석탑이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동탑은 대웅전의 탑으로, 서탑은 각황전의 탑으로 조성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이 마저도 동탑은 대웅전과는 약간 비껴앉아 있고 서탑도 각황전과는 비껴 앉아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1995년 서탑에서 법신사리로 짐작되는 종이뭉치가 발견되어 현재 보존처리중이며 보존처리가 완료되면 석가탑의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발견되었던 종이뭉치에서 밝혀지듯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 밝혀지게 될 것으로 판단이 되며, 이 종이뭉치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대신하여 봉안한 법신사리로 보여지는데 화엄종찰로서 화엄경이 아닐까 여겨지고 있습니다.

 

 탑을 살펴보면 두 탑은 통일신라의 탑이면서도 특이하게 5층의 탑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5층의 탑신은 위에 열거한 같은 시기에 제작된 석탑과도 비교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탑이 정형화된 3층 석탑으로 조성되고 있음을 비추어 볼 때 5층으로 조성된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엄사 동오층 석탑>


 먼저 동탑을 살펴보면 보편적인 신라의 석탑 형태를 따라 조성되었으나 기단이 단층으로 이루어졌으며 옥개석의 받침은 4단으로 제작되어 통상 5단으로 제작되는 신라의 석탑과는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단을 위시하여 몸돌에는 정상적으로 가운데 기둥(탱주)과 모퉁이 기둥(우주)을 모각하고 있어 신라석탑의 정형을 따르고는 있으나 그 조각이 간략화되고 형식적으로 보여 서탑의 조형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화엄사 서오층 석탑>

 그러나 서탑은 동탑의 간결함과는 달리 매우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단은 신라탑의 정형인 이중기단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층 기단에는 2개의 탱주를 새기고 상층 기단에는 1개의 탱주를 새겨 신라 정형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탱주로 나뉘어진 하층 기단의 각 면에는 3구씩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겼습니다. (2개의 탱주를 새겼으므로 3면으로 구분이 되는데 이렇게 구분되는 3개의 면에 각각 3구의 십이지신상을 새긴 것입니다) 이 십이지신상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형체가 많이 없어졌지만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새겨진 동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십이지신상을 탑에 새기는 경우는 신라시대에는 드문 경우에 속하는데 하층 기단에는 주로 비천상(飛天像)을 조각하거나 또는 공양상을 조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번쯤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천상에 관한 내용인데 일반적으로 비천상을 쉽게 볼 수 있는것은 종(鐘)입니다. 종의 몸통에는 천의(天衣)를 휘날리는 아름다운 비천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의 몸돌에도 이런 멋진 비천상이 새겨졌더라면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요? 그런데 탑의 몸돌에 비천이 새겨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탑에 새겨지는 비천은 거의가 탑의 기단부...그것도 상층이 아닌 땅과 맞닿는 부분인 하층 기단에 새겨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비천을 땅바닥에 붙여 조각을 하였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불탑의 조성의미와 관련이 깊다 할것입니다. 불탑은 한 마디로 "부처의 무덤"입니다. 또한 열반의 경지에 다다른 천상계의 최고 경지라 할것입니다. 따라서 천상계를 오르내리는 비천상은 천상계 아래에 표현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옛사람들은 탑 하나에도 불교의 교리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이지신중 뱀(윗쪽)과 양의 조각>

  상층의 기단은 탱주의 모각으로 인하여 각면이 두 개의 면으로 구분이 되었는데 이렇게 구분된 면을 팔부신중(八部神衆)으로 새겨 넣었습니다. 조각 수법은 전성기의 신라탑에 나타난 조각과는 달리 조형적 측면에서는 다소 역동성이 부족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각 면에 새겨진 2구씩의 팔부신중(위 사진)과 팔부신중의 확대 모습>

 그리고 탑신부의 몸돌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각 면당 1구씩의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으며 문비(門扉 :문짝 조각)는 없습니다.

 

                        <사천왕과 밟고 있는 악귀좌의 섬세한 조각 표현 모습>

 

 사천왕의 조각은 팔부신중과는 달리 힘이 넘치며 세부 표현에 있어서도 상당히 세심한 표현으로 위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악귀좌의 모습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엄사 동서삼층석탑은 언뜻보면 똑 같은것 같지만 각기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탑이 주는 느낌은 단순함과 화려함으로 마치 불국사 다보탑의 화려함과 석가탑의 단순함이 금방 머리에 떠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화엄사 동서삼층석탑은 탑의 기단과 몸돌에 나타난 조각에서뿐만 아니라 옥개석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어 동탑의 네귀는 약간의 반전만 보이고 있으나 서탑의 네 귀퉁이의 반전은 동탑과 달리 상당히 경쾌하게 위로 치솟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탑을 단순한 양식적인 비교로 본다면 서탑이 조성된 후 동탑이 조성된 것으로 판단이 되지만 다보탑과 석가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일 공간에서 다른 목적으로 조성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런 문제는 서탑에서 발견된 묵지의 보존처리가 끝나면 알게 될 것이지만 화엄사의 두 탑을 살펴보노라면 동탑은 묵직하고 믿음직한 남정네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반대로 서탑은 화사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네의 모습으로 눈 앞에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출처 : 수수께끼의 낡은 보물창고
글쓴이 : 가시나무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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