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택/불상및 탑의 종류

[스크랩] 지리산 화엄사 4사자삼층석탑

시인의마을들 2006. 6. 9. 10:14

  국립공원 지리산은 '방장산(方丈山)' 또는 '두류산(頭流山)' 이라고도 하며, 행정구역상으로는 求禮, 南原, 山淸, 河東, 咸陽郡 등 3개 道 5개 郡에 걸쳐있는 큰 산으로 옛날 신라시대부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어머니인 '선도성모(仙桃聖母)'가 거쳐하는 靈山으로 이 땅에 존재해 왔었습니다. 성모 (聖母)가 거하는 산이라서인지 지리산의 산신은 일반적으로 산에 있는 "산신령"과는 달리 "산신 할매"라고 불리며 山勢도 남성적인 면 보다는 여성적인 면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높이 1,915m의 천왕봉(天王峰)을 중심으로 반야봉(般若峰)과 노고단(老姑壇)이 3대 주봉을 이루고 있으며 1967년 12월 29일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립공원 제 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지리산이 워낙 넓은 산이어서인지...아니면 영산이어서인지 옛부터 산기슭과 계곳 인근에는 유명한 사찰이 산재해 있습니다. 지리산에 펼쳐 앉은 사찰들을 대충 살펴봐도 화엄사(華嚴寺), 실상사(實相寺), 연곡사(燕谷寺), 단속사(斷俗寺), 쌍계사(雙谿寺) 등등 유명한 사찰은 물론이고 이 사찰들이 간직하고 있던 문화재가 즐비한, 말 그대로 문화재의 보고(寶庫)입니다.

 

 일천자 답사기의 첫회로 지리산에 산재해 있는 사찰중 화엄사(華嚴寺)를 택하였습니다. 화엄사를 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재가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호에서는 화엄사(華嚴寺)의 많은 문화재중 첫번째로 꼽을 수 있고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석탑으로 일반적인 석탑의 형태를 벗어난 이형석탑(異型石塔)인 4사자 삼층석탑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화엄사 4사자석탑이 있는 '孝臺' 전경>

 

   이 탑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중에서 불국사(佛國寺)의 다보탑(多寶塔)과 더불어 유일한 이형석탑입니다. 이 탑과 유사한 탑으로는 2기의 석탑이 있는데 모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충북 제원군 한수면의 월악산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사자빈신사지(獅子頻迅寺址)' 4사자석탑(보물 제 94호)과 강원도 홍천군 괘석리에 있는 4사자석탑(보물 제 540호)이 있습니다.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  

 

                      <신라시대의 이형석탑의 하나인  불국사의 多寶塔 >

 

                             <충북 제원군 한수면의 '사자빈신사지 석탑'> 

 

                                         <강원도 철원군 괘석리 4사자석탑>

 

 위의 3가지 사진에서 보듯 3가지 석탑은 모두 사자를 기단으로 조성하였으나 그 형태나 사자의 모습은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3기의 탑을 비교하여 살펴보는 것도 시대적인 조형 양식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4사자삼층석탑이 있는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때인 544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에 의하여 건립된 사찰이었는데 임진왜란을 맞아 완전히 불 타 없어져 버리고 1630년 벽암선사(碧巖禪師)에 의하여 다시 지어졌고 각황전(覺皇殿)을 비롯하여 대웅전, 종각, 동서 오층석탑, 사자탑, 석등 등 국보 3점과 보물 4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4사자 삼층석탑은 웅장한 목조건물인 각황전(覺皇殿 :국보 제 67호)의 좌측편 뒷쪽의 약간 높은곳에 "효대(孝臺)"라고 불리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르려면 각황전의 좌측으로 난 108개의 계단을 지그재그로 올라야만 되는데 이 탑의 건립에 대한 기원은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는 전설이 있어 그 효심을 기려 탑이 있는 일대를 '효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화엄사 각황전의 웅장한 모습....이 건물의 좌측 지붕의 내림마루 뒷쪽에 탑의 상부가 보이는 곳이 효대지역으로 4사자삼층석탑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탑은 5.5m 높이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탑으로 2층의 基壇 위에 일반적인 삼층의 석탑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탑을 이형석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두개의 층으로 구성된 기단부(基壇部)중 2층 기단이 아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돌로 만들어진 4마리의 사자로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화엄사 4사자 석탑의 2층 기단부는 4마리의 사자가 머리로 탑신 甲石을 받치고 있다>

 

 <제천 사자빈신사지의 석탑에서도 기단받침으로 4마리의 사자를 배치하였으나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이형석탑을 모방한 것으로 보여지며 화엄사 4사자석탑과 달리 사자가 탑신의 무게를 버거워 하는듯 목이 움츠려든 모습입니다>  사진출처 : 소구리

 

  <홍천 괘석리의 4마리 사자는 사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생략된 수법이며 크기도 비례를 이루지 못하고 훤출하고 멀쑥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상층 기단은 隅柱(우주: 모퉁이 기둥)를 대신하여 연화대위에 앉아 있는 암수 두 쌍의 사자를 네 모퉁이에 세웠으며 각 사자의 머리 위에는 연화대를 얹어 갑석(甲石)을 받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4마리의 사자는 포효하는 모습 등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어떤 사람들은 인간세상의 喜,怒,哀,樂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합니다. 또 사자는 중앙의 승려상을 사방으로부터 지키는 형상도 취하는데 이는 佛法을 전파하는 자장대사, 또는 연기조사의 형상이라고도 하며 사자는 이 불상의 주인공을 지키고 있다 하겠습니다.

 

 4마리의 사자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면 가지런하게 모은 앞발, 암놈의 앞발 중간에 표현된 팔꿈치, 포효하는 숫사자와는 달리 비교적 얌전을 떨고 있는 암사자의 얼굴, 오므리고 앉아있는 뒷발의 꺾인 각도, 머리 뒤편의 곱슬머리로 처리한 머리털, 목에 걸친 영락의 형태, 툭 불거진 숫사자의 눈과는 달리 조금은 얌전하게 표현된 암사자의 눈 등등 각각의 사자들이 뿜어내는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탑의 기단 상층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보살상과 얼굴의 모습... 불국사 석굴암 주존불의 얼굴에서도 단청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으며 이 보살상의 입술에도 빨간 색상이 남아 있어 불상에도 단청과 마찬가지의 색상을 칠했음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사자의 암수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사자는 숫사자이며 입을

 다문 사자는 암사자로 봅니다. 또 사자의 목에는 긴 털로 이루어진 갈기 대신에 구슬로 장식된 영락을 걸고 있습니다>

 

 <무섭게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에서 불법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자를 표현함에 있어 백수의 왕을 나타내는 갈기는 뒷머리의 곱슬거림으로 표현하였으며 꼬리는 얕은 돋을새김으로 몸의 뒷쪽에 표현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초층의 기단도 다른 탑과는 달리 탱주(撑柱 : 가운데 기둥)는 없고 우주(隅柱 :모퉁이 기둥)만 있으며 1面에 3區씩 사방에 12區가 각양각색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으로 양각되어 있습니다. 이 천인상(天人像)은 모두 영락(瓔珞)으로 치장하고 천의(天衣)를 너울거리듯 경쾌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춤추는 자세로 공양하는 불천(佛天) 찬미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악비천상을 비롯하여 천의를 날리며 하늘을 나는 불천상등 다양한 모습의 상이

  기단 하층에 12구가 양각되어 있는데 조각의 수법이 무척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塔身을 살펴보면 제 1층 탑신의 4면에는 문비(門扉 ; 문짝모양의 형태로 자물쇠가 달려 있는데 이는 원래 탑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진신사리 이외에도 인조사리나 법신사리를 봉양하였다는 의미로 문비가 모각되었습니다)가 모각되어 있으며 문비 양 옆으로 남동쪽 면에는 인왕상이, 양 옆면에는 사천왕상, 그리고 뒤쪽에는 보살상 2구씩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제 2층 탑신 이상은 1개씩의 돌로 되어 있는데 우주는 돌에 모각을 하였고 옥개석(屋蓋石:빗물받이 돌) 받침은 신라 석탑의 양식대로 각각 5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탑의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 복발과 보주만 남아 있습니다.

 

   <문비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는 보살상이 뛰어난 조각술로 양각되어 있습니다>

 

                                        <문비 양쪽에 있는 인왕상>

 

 "효대"에는 두 개의 석조물이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탑 중앙의 승려상은 연기조사의 어머니이며 탑 전면 5m 남짓 되는 곳에 석등(石燈)이 있고 그 석등 밑에는 세월의 흔적이 뭍어나는 좌상이 있는데 이 좌상의 주인공이 바로 연기조사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지극한 효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 효심으로 인하여 이 탑이 있는 지역을 '효대"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사자삼층석탑앞에 있는 석등과 석등의 화사석 아래 있는 공양상. 석등의 화사석의 갑석을 받치고 있는 간주석은 3개로 조성되어 전체적으로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불안정해 보이는데 이렇게 3개의 간주석을 사용하는 경우도 드문 일입니다>

 

<석등 뒷편에서 바라본 석탑의 모습으로 연기조사가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 효심에

   관한 전설이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탑 이외에도 2기의 유사한 석탑이 있다는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2기의 고려시대 석탑은 조각수법도 정교한 편이 못되지만 이 탑은 능숙한 조각기법과 잘 어울리는 조형을 보이고 있어 무르익은 통일 신라시대의 정교한 조각 수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라 할수 있습니다.

출처 : 수수께끼의 낡은 보물창고
글쓴이 : 가시나무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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