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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코리아, 경상북도, 독도지킴이 등 강력 규탄 | |
최근 일본이 방위백서를 통해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국내 사회 곳곳에서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오전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라이트코리아(대표 봉태홍), 실향민중앙협의회(회장 채병률) 등 보수단체는 일본의 2012년 방위백서 독도 영유권 주장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는 "일본은 8년전부터 터무니없이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고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며 "독도는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토로써 일본의 그 어떠한 도발도 단호히 응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보수단체는 "일본이 대한민국의 이웃나라로서 우호적인 관계를 희망한다면 즉각 방위백서를 취소하고 독도 침탈 망상을 집어치우기 바란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 "지속적으로 독도 침탈만행을 그치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 가지 않기(비자 자진 취소), 일본 상품 불매 운동, 일본 국제사회 고발' 등을 벌여 나가면서 독도를 위한 일본 응징을 단호히 전개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이웃나라의 영토를 탐하다가 자신의 영토가 바다에 침몰하는 비극을 맞지 말고 독도 침탈야욕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단체는 또 종북주의자들의 국회 침투에 대한 문제점도 성명서를 통해 제기했다. 특히 "국가(國歌)와 국체(國體)를 부정하는 것은 간첩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이석기와 김재연과 같은 종북주의자와 의정활동을 같이하여 종북동참 내지는 종북방관의 비난을 받지 말고 이석기와 김재연 의원의 자격심사 청원을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보수단체 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규탄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1일 오전 경북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도를 관할하는 도지사로서 일본의 시대착오적인 독도 침탈 야욕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 지사는 성명서를 통해 "일본이 방위백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8년 간 같은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일본의 정치적.역사적 인식이 무력으로 주변국을 침략하던 군국주의 망령에 사로 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고 규탄했다.
이어 "계속되는 독도 침탈 행위는 시대착오적이며, 평화공존의 국제 질서를 무시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로서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규정하고 "독도에 대한 일체의 침략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일본의 계속되는 망언.망동에 대해서 정부와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으며 현재 추진 중인 독도입도지원센터, 독도종합해양과학기지, 독도방파제 건설 등 독도 영유권 강화 사업을 조속히 마무리 하고 독도 주민 보호와 국민들의 독도 탐방활동을 적극 지원 하겠다"고 말했다.
경북도의회도 1일 성명서를 통해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며 "3백만 도민과 함께 일본의 독도 침탈 행위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번 분쟁의 핵심인 독도관련 활동을 실시하고 있는 독도지킴이들도 규탄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마당독도지킴이는 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한 일본의 방위백서를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우리 땅인 독도를 두고 일본은 시네마현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의 날'이라는 행사를 벌이고 나아가 교과서, 방위백서에까지 자신들의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사과하고 주한 일본대사관은 홈페이지에 표기된 독도와 동해 표기를 즉각 개선하라"고 주장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31일 오전 내각회의를 열고 독도가 자국의 영토라는 내용을 담은 2012년 방위백서를 의결했다.
독도지킴이는 우리 정부의 모호한 대응도 비판했다. 이들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에 대한 정부의 모호한 입장은 가관이다"라며 "일본 정부의 꾐에 빠져 엉뚱한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일군사협정은 남북통일운동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 명백하다"며 한일군사협정 폐기를 주장했다.
앞서 7월19일 김황식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폐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강창희 국회의장은 다음날 김 총리에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추진의 책임을 묻는 해임안을 직권상정했다. 국회 표결에 부쳐졌지만 정족수 미달로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불성립' 됐다.
일본의 방위백서는 매년 일본 방위성이 작성하고, 내각회의를 거쳐 확정하여 대내외에 발표해 왔고 지난 2005년에 처음으로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기술한 이후 올해까지 8년째 같은 주장을 반복해 오고 있다.
방위백서에 따르면 일본은 본문 내용 첫 페이지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주변의 안전보장 환경'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 및 다케시마의 영토문제가 여전히 미해결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이는 2005년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로 규정한 이후 8년째 같은 입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한편 일본이 주변국들의 반발과 마찰을 예상하면서도 이와 같이 무리수를 두는 배경은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인한 내부불만과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원전사고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의 부재로 맞은 정치적 위기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극우세력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이는 곧 사회 전반의 우경화를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며 과거사와 영토문제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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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역사
세종대왕은 남해안에 상륙하여 우리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물을 약탈 해가는 왜구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419년 6월19일. 삼군 체찰사(體察使) 이종무 장군을 선봉장으로 대마도를 정벌하여 대마도 도주 도도웅와(都都熊瓦)의 항복을 받아내고 병조판서 조말생으로 하여금 ‘대마도는 조선 땅이며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속 한다’는 서찰을 대마도 도주에게 전하였다. 세종대왕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대마도 도주 도도웅와에게 교지를 내려 ‘도덕과 윤리가 통하도록 하여 멸망의 화(禍)를 자초하지 말지어다’고 근엄하면서도 추상같은 호령을 내리고 있다. 이때를 을해동정(乙亥東征)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며 대마도본시아국지지(對馬導本是我國之地)라고 세종실록 제1권에 뚜렷이 써 있다. |
구한말 시대 일본이 일방적으로 편입
1859년 3월 31일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으로 개항한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유도에 의해
국내 정세가 크게 변했다. 이에 따라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도 일변하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마도가 대행하고 있던 조선과의 외교와 무역을 직접 관장하려 했다.
1868년 1월 3일 도쿠가와 막부의 조번체제(朝藩體制)가 붕괴하고 왕정복고·왕위 친정체제를
구축하려는 정변이 일어났다.
이로써 웅번(雄藩)들은 판권봉환(版權奉還·왕정으로 복귀함에 따라 각번의 영주들의 영역권을
천황에게 바치는 것)에 들어가, 도쿠가와 막부의 제15대 장군인 도쿠가와 시게노부(德川慶喜,
1837∼1913년)도 정권을 개혁 조정에 반환하게 되었다.
1871년 8월 29일에는 폐번치현(廢藩置縣·막부 시절의 번을 없애고 근대적 지방 행정기관인 현을
두는 것)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외번부용(外藩附庸)의 대마도주 종의달(宗義達, 1847~1902)도
대마도를 판적봉환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종의달은 조신(朝臣)과 근위소장(近衛小將)이라 칭하고 이스하라(嚴原) 번지사
(藩知事)가 되었다. 그러나 1877년 대마도는 나가사키현에 편입되면서, 현에 속한 지방 행정지로
격하되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1875∼1965)은 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8월18일 전격적으로 '대마도 반환요구'를 발표하였다.
해방 이후의 논의
그러자 일본에서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 이하 내각이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9월9일 재차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며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후 이대통령은 공식적으로나 문서상으로는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교사절을 만날 때마다 대마도 영유권을 역설하였다.
미 군정 시기인 1948년 2월 17일에 열린 제204차 입법의원 본회의에서 입법의원 허간용(許侃龍·서북도 관선의원) 외 62명은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복귀시킬 것을 대일강화조약에 넣자는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 폭주로 연기되다 회기가 종결됨으로써 실현을 보지 못했다.
현재의 관점
그렇다면 대마도 영육권 주장은 과연 가능할까?
대마도에 대한 영토권 분쟁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후 한번도 제기 된 바가 없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대마도 영토 소유권에 대해 최종 합의를 선언한 바도 없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그리고 국제법상으로 충분히 의의 제기가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정부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까?
정말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영토 수복의 인식이 부족하거나, 그렇지도 않다면
친일세력이 여전히 정계와 제계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일까?
그러나 전혀 근거없는 음모론이나 정부에 대한 일방적인 불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들 중에는 국제법이나 역사에 대해 분명 뛰어난 전문가도 상당 수 있을 것이다.
영토권 주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지이다.
만약 대마도 주민들이 일본으로부터 분리요구를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면, 대마도 수복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 봐서 대마도 주민들은 완전히 일본인들이지 한국인들이라고 볼 수 없다.
설령 대마도를 국제분쟁지역화 한다고 하여도, 그들은 일본인임을 그리고 그곳은 일본영토임을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며로 일본에 비해 외교적 열세에 있는 우리나라가, 그런 승산없는 싸움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 하다.
그렇다면 이대로 대마도를 포기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일본은 우리영토임이 분명한 독도조차 자신들의 영토라고 억지 주장하며 동해를 분쟁지역화하는데
성공하였다.
대마도가 우리영토로 귀속될 가능성은 없지만, 우리역시 대마도를 분쟁지역화 하여 충분히 일본을
외교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그것은 총성없는 전쟁, 외교 전쟁이다.
물론 소모적인 논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지만, 대마도 확보는 일본에게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은 물론, 앞으로 해양진출의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해나 영공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지 않다.
반면 일본은 일제시절 확보하였던 유구열도등을 자신들의 영토로 일방편입하여, 세계적인
해양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일본이 확보한 배타적 경제수역이 중국의 몇배나 된다는 것은 매우 눈여겨 볼 만한 일이다.
기껏해야 한 두평 밖에 안되는 암초를 섬이라고 억지 주장하여 수백km의 바다를 확보한
일본인들의 철저한 국수주의 정신은 기분나쁜 것이긴 하지만, 분명 참고 할만한 것이다 .
우리는 대마도를 최소한 분쟁지역화 함으로써, 현재로도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에 대해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나라는 대해양 진출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부산에서 1시간… 대마도 안내
↑ ❶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❷ 나루타키 ❸ 신화의 마을 자연공원 ❹ 한국전망대
↑ 최익현 순국비
↑ 반쇼인
↑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 쓰쓰자키공원
↑ 미우라해수욕장
이즈마하마치
쓰시마시는 시청이 있는 이즈하라마치, 미쓰시마마치, 도요타마마치, 미네마치, 가미쓰시마마치, 그리고 가미아가타마치 등 모두 6곳의 지역으로 나눠진다. 부산에서 출발한 배가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은 가미쓰시마마치 이즈하라 항이다. 쓰시마에서 제일 규모가 큰 이즈하라마치는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다. 일본의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거리 풍경, 일본 시골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녹지와 문화 유산들도 많이 있다. 특히 최익현 순국비,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 등 한국의 역사와 직접 관련 있는 흔적들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 볼거리, 느낄거리들이다.
영감이 마구 떠오르는
쓰쓰자키
쓰시마 최남단에 위치한 곶(갑)으로, 대한해협에서 쓰시마해협으로 돌아들어 오는 곳에 돌출되어 있다. 거친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과 암초들 그리고 바다 저편의 새하얀 등대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20m 높이의 등대는 쓰시마난류를 타고 북상하는 선박들의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해류가 교차하는 곳이라 어종이 풍부하고 성게, 소라, 전복, 방어 등이 많이 잡힌다. 바다를 보고 있는 것 자체로 영감이 마구마구 떠오르는 힐링 포인트이기도 하다.
눈 아래 세상
가마자카 공원
표고 385m에 위치한 전망대로 대마도는 물론 일본의 대표적인 리아스식 해안인 아소만의 신비로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맑은 날에 올라가면 멀리 일본 본토의 규슈와 한국의 남해안에 펼쳐진 산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원시 자연의 보고
다테라야마
해발 559m의 다테라 산은 북쪽 측면 해발 120m 지점에서 정상까지 분포하고 있는 원시림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발 350m 부근을 경계로 하단은 구실잣밤나무, 상단에는 북가시나무가 분포하고 있다. 상단의 구실잣밤나무 숲은 나무의 높이가 20m, 밑둥의 최대 반경은 1m에 달한다. 장소에 따라서는 조롱나무도 많이 있다. 상단의 구실잣밤나무 숲은 습기가 많은 표고 1500m에서 발달하는 산림으로 북가시나무를 비롯하여 야생 동백나무, 황칠나무, 광나무 등이 생육하고 있으며, 일본인우(쌍떡잎식물, 운향과의 상록관목)도 볼 수 있다. 다테라야마 원시림은 저지대에서부터 고지대까지 광법위하게 분포하고있어 귀중한 자연환경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보존 상태와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에도시대 선착장
오후나에
이즈하라 항의 남쪽 구타(久田)포에 남아있는 옛 에도시대 쓰시마 번주의 선착장으로, 항해에서 돌아온 배를 격납하거나 수리한 곳이다. 내부에 4곳의 돌출 제방과 5곳의 선거(독,dock)가 있다. 이 유적은 1663년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돌담은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만조 시에는 많은 양의 바닷물로 채워져 대형 선박도 출입할 수 있었으며, 반대로 간조 시에는 물이 빠져 하물의 선적 등에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정문, 창고, 번주의 휴식처 등도 남아 있어 당시의 웅대한 규모를 엿볼 수 있다. 나가사키현 지정사적이다.
비극의 여인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소설로 발표되면서 더욱 유명한 사람이 된 조선왕조 고종의 딸 덕혜옹주는 제국주의 일본의 정략에 의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일본의 쓰시마 번주 타케유키 백작과 결혼, 딸 종혜까지 보았으나 1955년에 파경을 맞았고 1961년에 귀국,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그가 결혼했을 때는 쓰시마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 기념비를 세워주었다.
고색창연이란 이런 것
반쇼인
에도시대 쓰시마번의 관청이 위치해 있었던 이즈하라의 서쪽 아리아케(有明)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낙엽수림이 뒤덮힌 일대를 포함해 '쓰시마번주 소가묘소'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본 3대 묘지 중 한 곳이다. 사원은 초대 번주(宗가 19대) 요시토시(義智)의 뒤를 이은 제2대 번주 요시나리(義成)가 아버지를 기리며 1615년에 창건한 쇼온지(松音寺)를 1622년 요시토시의 법호를 따라 반쇼인으로 개칭한 곳으로, 이곳에 역대 쓰시마번주와 그 일족이 모셔져 있다. 묘지는 햐쿠간기(百雁木)로 불리는 132개의 돌계단을 오른 곳에 마련되어 있다. 이즈하라에 처음으로 관청을 둔 제10대 종가 사다쿠니와 요시토시 이하 32대까지의 번주와 그 가족의 묘가 울창한 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상단에는 요시토시 이래의 번주와 그 정부인, 중단에는 측실과 아동, 하단에는 일족 및 소가(宗家)에서 출가한 사람 등이 모셔져 있다. 그 중에서도 대조선무역이 활발하였던 시기의 번주 요시나리(義成)와 요시자네의 묘는 다른 묘에 비해 훨씬 커 쓰시마와 조선의 무역이 얼마나 활발하였던가를 짐작케 한다.
제대로 알자 대마도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
나가사키 현에서 1978년에 설립한 민속자료관이다. 쓰시마섬의 문화재, 고고 역사 자료, 민속 자료, 명문가의 문고 등 귀중품이 전쇠되어 있다. 조선통신사 행렬도를 볼 수도 있다. 대마도를 제대로 알고싶다면 꼭 들려봐야 할 곳이다.
애잔한 심정
최익현 순국비
구한말 대유학자이자 구국항일투쟁의 상징인 최익현은 쓰시마에 유배되어 순국하였다. 쓰시마에서 감금 3년형을 받게 된 최익현은 1906년 8월 28일 아침 이즈하라로 호송되어 왔다. 그는 2년형을 받은 임병찬과 함께 하치만구 신사 남쪽에 위치한 제사전습소에 수용됐는데, 쓰시마경비대 수용소가 완성되기 전 3개월간 이곳에 구류되었다. 임병찬의 <대마도일기>에 의하면 12월 4일 발병의 기록이 보이며 경비대에서는 사람을 붙여 간호하였으나 1907년 1월 1일 생을 마감했다.장례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슈젠지에서 치뤄졌으며 유해는 부산으로 이송됐다.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슈젠지에 비를 세웠다.
은어가 돌아오는 자연 공원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세강은 쓰시마에서 제일 높은 산인 야타테야마와 다테라야마에 둘러싸인 우치야마 분지에서 발원하고 있다. 이 세강 유역을 포함한 다테라야마 원시림의 산기슭 약 26ha가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산 속 깊은 곳까지 수량이 풍부하여 은어가 많이 거슬러 올라 오는 것으로 유명하나, 세강의 거친 물살로 인해 상류인 우치야마 지역까지는 올라오지 못한다. 공원 입구의 주차장에는 이시야네 휴게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세강 위에 걸쳐 있는 구름다리에서 강을 내려다 보면 계곡 전체가 천연의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웅대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표고 144m의 높이에 마련되어 있는 만남의 광장을 중심으로 세강의 사면에 스포츠 슬라이더, 잔디썰매장, 퍼팅골프장, 캠프장, 삼림욕장 등이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Tip
축제도 보고 여행도 하고
대마도에서는 매달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여름 즈음에 열리는 축제로는 지조봉, 야쿠마, 이사리비, 쓰시마아리랑축제, 쓰시마친구음악제 등이 있다. 7월 24일 이즈하라마치 시내에서 열리는 '지조봉'은 현지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을 축원하는 축제로 시내 곳곳에 유카타 차림의 남녀들과 집안의 안전과 사고 방지, 평화를 기원하는 신앙의 상징인 지장보살상이 새단장을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8월 4일과 5일에 이즈하라마치 시내에서 열리는 '쓰시마 아리랑 축제'는 쓰시마 최대 규모의 축제로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한일 전통무용, 어린이 가마행렬, 노젓기 대회, 불꽃놀이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쓰시마 친구음악제는 미쓰시마마치 쓰시마 그린파크에서 8월 네번 째 토요일에 열린다. 한국과 일본의 유지션이 참가하는 음악 축제로 바비큐와 파티에 참여할 수 있다.
가미쓰시마마치 부산항에서 배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정말 가까운 곳이다. 대마도 최북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망대 등 우리나라와 연관된 공간과 일본의 자연, 특히 너무도 아름다운 미우다해수욕장이 이곳에 있다.
쓰시마 유일 폭포나루타키쓰시마는 섬의 88%가 산림으로 이뤄져 있다. 울창함에 비해 강은 가파르지 않아 폭포 구경하기가 어렵다. 나루타키는 쓰시마 유일의 폭포로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나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야~~ 보인다 보여!한국전망대쓰시마 최북단 와니우라의 한국전망대는 한국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이다. 한국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는 132km로 한국에 훨씬 더 가깝다. 날씨가 좋은 날은 부산시의 거리가 보이는 그야말로 '국경의 섬'임을 실감케 하는 곳이다. 전망대 주변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으며 해안 단구의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어 멀리 작은 무인도들이 징검다리처럼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는 조류가 빠르며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도가 거칠어진다. 전망대 건축물은 한국의 건축양식으로 1997년에 세워진 것이다. 기와지붕의 팔각정 형태로 서울 탑골 공원에 있는 정자를 모델로 했고 전망대로 진입하는 도로 입구에 세워진 문은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의 것을 모델로 했다. 설계단계에서부터 한국 학자에게 자문을 구했으며 한국산 재료 구입 및 전문가 초빙 등 철저히 한국풍을 고집했다.
태고 흔적 걷기아지로 연흔가미쓰시마마치 아지로지역에 해변을 따라 길이 약 200m, 높이 약 15m의 장대한 규모의 울퉁불퉁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이것은 얕은 바다의 잔물결의 흔적이 화석화된 것으로 '연흔ʼ이라 한다. 태고적 지질시대의 산물이다. 규모도 매우 커 태고의 물결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쓰시마의 지질은 섬 전체가 다이슈층으로 칭해지는 사암(모래가 물속에 갈아 앉아 굳어서 된 바위)과 혈암(점토가 엉겨 붙어서 된 암석)이 주를 이루고 있는 지질층으로 두께는 4000m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연흔은 이 다이슈 지질층의 사암 위의 흔적이다. 연흔은 물의 흐름, 기류, 또는 파랑의 작용에 의해 사층의 표면에 형성된 물결 모양의 흔적으로, 모래 입자의 질량, 크기, 형태와 모래를 움직이는 힘의 차이로 인해 수류(水流)연흔, 파도(波)연흔, 풍성(風成)연흔, 간섭(干涉)연흔으로 분류된다. 또 평면의 모양에 따라 직선 모양, 곡선 모양, 혀 모양, 반달 모양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아지로의 연흔은 중, 세립 사암에 수류에 의해 형성된 혀 모양 연흔에 해당된다.
바다로 들어간 영령을 위하여조선국역관사순난비1703년 음력 2월 5일 아침, 부산항을 출항한 배 3척이 있었다. 정사 한천석, 부사 박세양을 비롯한 108명의 역관사(통역관) 일행이 탄 사선과 쓰시마번의 책임자 야마가와 사쿠자에몬이 방문을 위해 보내준 자신의 배와 예인선이었다. 출항 당시에는 날씨가 좋아 순풍을 타고 순조롭게 항해를 하고 있었으나 정오가 지난 후 기상이 급변하여 3척 모두 좌초되고 말았다. 사고가 나자 당시 쓰시마번과 마을 사람이 구조와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도착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와니우라 앞바다에서 전원이 사망하는 비참한 해난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로부터 380여 년 뒤인 1991년 3월 20일 한일건립위원회가 이국의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역관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조난 현장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한국전망대 바로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
쓰시마 상징나무와니우라 이팝나무촌쓰시마市의 시목인 이팝나무 군락지인 와니우라는 이팝나무가 아니더라도 들려볼만한 해안 마을이다. 이팝나무는 높이 15m, 둘레 70cm에 달하는 낙엽목으로 대만과 한국, 중국 대륙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가미쓰시마치의 와니우라 일대와 중부지방의 기소강 유역(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에서만 자생하고 있다. 5월 경 1.5~2cm의, 꽃잎이 4개로 갈라진 순백의 꽃이 활짝 피어 마치 눈이 내린 듯한 풍경이 와니우라 만의 바다에 비쳐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1928년 와니우라지구는 이팝나무 자생지로써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쓰시마 주요 숙박
가미쓰시마 지역우메야호텔 0920-86-2016 / 쓰시마호텔프라자 0920-86-3216 / 가미소호텔 0920-86-3120, 오다여관 0920-87-0065, 유타카소 민숙 0920-86-3262 / 니시도마리 민숙 0920-86-2685 / 이즈미 민숙 0920-86-3571 / 야나기소 민숙 0920-86-2765 / 다치바나 민숙 0920-86-3173, 이무다펜션 0920-86-3110이즈하라 지역씨사이드호텔 하마유 0920-52-2769 / 쓰타야호텔 0920-52-0806 / 호텔카키타니 0920-52-1860 / 호텔킨세키칸 0920-52-0154 / 호텔쓰시마 0920-52-7711 / 마루야 호텔 0920-52-1970 / 야나기야호텔 0920-52-0332 / 쓰시마 대아호텔 0920-52-3737 / 뷰호텔 미즈키 0920-52-2188 / 씨사이드 아넥스 0920-52-2343 / 호텔 벨포레 0920-52-1301 / 반쇼카쿠 여관 0920-0021 우메노야 민숙 0920-57-0096 / 가이키소 민숙 0920-52-0784 / 가즈야 민숙 0920-57-0303 / 아비루 민숙 0920-57-0839 / 미나토 민숙 0920-52-1098 / 곤도 민숙 0920-57-0775 / 스가와 민숙 0920-52-6058 / 다치바나 민숙 0920-57-0678 / 쓰쓰민숙 0920-52-2728 / 나카무리 민숙 0920-52-2527 / 고메다 민숙 0920-57-0273 / 페코짱 민숙 0920-52-1716 / 시마모토소 민숙 0920-52-1705 / 친구 민숙 0920-52-8820 / 기라쿠나야도 민숙 0920-52-2970 / 센료 민숙 0920-52-4406 / 히노키산장 펜션 0920-52-1776 유스호스텔 세잔지 0920-52-0444선박편항공편김포 - 쓰시마 주 5회 / 소요시간 1시간10분 / 하나투어패키지상품 구입 시에만 이용 가능 /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 1588-2682 *하나투어 대마도 에코투어 2일 39만9000원부터 김포공항 - 18인승 TURBOPROP 1900D편 - 쓰시마공항 - 대마역사민속자료관 - 조선통신사비 - 고려문 - 덕혜옹주비 - 최익현선생 순국비 - 에보시타케 전망대 - 와타즈미신사 - 한국전망대 - 미우다해수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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