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윤 진 부산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병에 걸렸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 어딘가 아프거나 눈에 보이는 이상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거나, 눈에 보이는 상처가 있는 환자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병원을 방문하는 많은 환자들은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별로 아프지도 않는데 병원을 찾고 있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어떤 병은 아프기 때문에 치료하기 보다는 검사 결과 이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치료한다. 우연히 발견한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골절이 없는 골다공증 등이 그 예이다.
만약 혈압계가 없다면 알지 못했을 고혈압은 혈압 측정으로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혈당계가 없었다면 역시 몰랐을 당뇨도 혈당 측정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하게 된다. 나아가서는 뼈 골절이나 골다공증도 이상 증상을 느끼지 않더라도 골밀도 측정기의 등장으로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알 수 있다.
오늘날은 많은 질환들을 증상이 없는 무증상의 상태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 태도 또한 증상이 있는 질환과 다르다.
고혈압을 발견하고도 치료에 소홀한 환자를 흔히 보게 되는데 아무 증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고혈압으로 몸에 이상을 느꼈다면 당장 치료를 했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치료를 미룬 것이다.
이렇게 치료를 미루는 것은 고혈압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뇨, 고지혈증 등의 주요 만성질환의 진료를 받는 환자들 중에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증상이 없는 병을 치료하는 목적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생길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 시기를 소홀히 한다면 증상이 악화돼 더욱 힘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시간이 갈수록 의학의 지속적인 발달로 아무 증상이 없는데도 치료를 해야 할 질환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더욱 조기에 무증상의 이상을 발견하고, 더욱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아무 증상이 없다고 해서 치료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증상이 나타나서 치료를 시작하면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이상은 있지만 아프지 않는 질병의 치료를 당연히 생각하고 치료를 받는 것에 익숙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만약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등의 질환이 있는데 증상이 없다고 치료를 안하고 있다면 즉시 치료를 재개할 것을 권한다. 자신은 물론 가족을 위해서도 모두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출처 부산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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