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짓는 순서와 기법
□알림--아래 글은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집짓기에 대하여 쓴 글 중에서 요긴한 내용을 간추린 자료. 이런 유형의 글은 매우 단편적이고, 여러 문헌에 조금씩 실려 있어서 조직적이긴 어렵다. 그러나 꾸준히 집대성하면 상당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어 매우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홍만선(洪萬選, 1643~1715. 숙종 때 실학자 실용과 후생에 대한 조예가 깊다.)의 『산림경제(山林經濟)』 복거(卜居)편에 기록되어 있는 집과 관련된 글(說).
1. 집터 고르기
지세(地勢)를 논함
□지세를 먼저 선택한다. 뭍과 물에 통할 수 있는 고장이면 아주 좋다. 산을 등 뒤로하고 호수를 앞에 두면 경치 좋은 곳으로 손꼽히나, 그 형국이 넓어야 하며 또한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재리(財利)를 얻을 수 있다.
□집터를 정하거나 무덤을 쓰는 일에는 음, 양의 구별이 있으나, 산천 풍기(風氣)의 취산(聚散)을 살핌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가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차이가 없지도 않으니 용머리가 당도한 자리를 수각(手脚)하여 개기(開基)한 즉 살림집터가 되고, 수각을 수용한즉 무덤자리가 되는 차이가 있다.
□집터는 널찍하고 평평하여 좌우가 넉넉하여야 좋고, 명당(明堂)이 넓은 중에 토지가 기름지고 샘물이 맑고 달며 나무들이 무성하면 좋다. 토지가 메마르고, 윤택하지 못하면 나쁘다.
□집터가 큰 산 아래에 바싹 있으면 사태의 위험이 있고, 강이나 바닷가 가까이 있으면 해일의 염려가 있으며, 먹을 물이 나쁘다.
땔나무 얻기 어렵고 큰 짐승 위험도 있으며 도적들이 출몰할 가능성이 있는 곳엔 집터를 잡지 말아야 한다. 또한 배와 수레들이 몰려들어 장삿속으로 다투는 곳 역시 살림집터로는 마땅하지 못하므로 피해야 한다. 자식들 교육에 지장이 있다.
평지에 집터를 고를 때
□끝없이 너른 들, 광야에서 집터 고를 경우, 그나마 역혈(歷穴)이 결작(結作)된 자리를 찾으려면 약간이라도 융기한 높은 곳을 찾는다. 높다하지만, 그 높이가 불과 몇 치(數寸)일 수도 있다. 그 만큼이라도 솟았으면 높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적혈(的穴)이라 한다.
경(經)에 "땅에 길기(吉氣)가 있다면 터에 따라 일어난다." 하였으니, 이로써 최고(最高)의 자리를 얻는 것이다. 반대로 전혀 높낮이가 없거나 움푹 패어 있거나 도랑처럼 꺼져 있는 자리는 필시 가난하게 되며, 아이들이 허약하여 늘 병치레가 많게 되므로 단연히 피하여야 한다.
평지 중에서 우뚝 솟아 언덕처럼 된 곳을 더러 호위조응(護衛照應)이라 하여 정기(正氣)가 모였다고 일컫지만, 살림집터로는 불길한 자리이다. 이런 곳은 절[寺社]이나, 사당[서낭당], 신궁(神宮)의 터전이면 감응이 있을 그런 자리이다. 또한 평지에서 살림집터 고를 때, 우선 물을 쉽게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터전의 지세가 환란(環?)하며 조당(朝堂)에 당면(當面)하면 인재의 왕성함을 얻을 수 있다.
골짜기에서 집터를 고를 때
□골짜기의 집터는 기슭에서 약간 떨어져 내린 평지가 좋다. 실팍하고 평이하면서 둘레의 등성이가 알맞게 둘러싸여 있어 공결(空缺)하거나 중간에 이가 빠진 듯한 결함이 없으면서 하수(下水)가 유력(有力)하고, 등성이 아래 골에 흐르는 물길이 감돌아들면서 그 안에 벌어진 터전이 개창(開暢)되어 명당이 이룩되고 그 혈이 개전(開展)되어 관활(寬活)하고 평탄하기가 비록 골짜기 속에 있으되 넓고 평탄하다면 최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형국이 좁으면 불길함을 면하기 어렵다.(中略)
골짜기의 양기는 장풍(藏風)을 으뜸으로 치고 용기(龍氣)에 승득(乘得)한 것을 길하다고 하는 것이니, 부질없이 파내거나 해서 터전을 넓힌답시고 수평고름 하면 기맥(氣脈)을 상하여 불리하게 된다.
집터를 살펴봄
□집터는 동쪽편이 높고 서편이 낮으면 생기가 융기(隆起)하고, 서쪽이 높고 동편이 얕으면 부자는 되나 대단하지 못하며, 앞쪽이 높고 뒤가 낮으면 집안에 좋지 못한 일이 잦고, 뒤편이 높고 앞이 낮아 트였으면 재산이 늘고 세세에 영호(英豪)를 낳는다 하며, 사방이 높고 가운데가 낮으면 부자일지라도 결국에는 가난해지나 국면이 넓고 평탄하면 아주 좋다.
□집터가 정서(正西, 卯酉之居)나 정북(正北, 子午之居)을 향하였으면 아주 나쁘다.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터전은 좋고, 동서가 길고 남북이 좁으면 처음에 흉하나 차츰 좋아진다. 오른쪽이 길고 왼쪽이 짧으면 부자가 되고, 왼쪽이 길며 오른쪽이 짧으면 자손이 적다. 앞이 넓고 뒤가 좁으면 가난하며, 앞이 좁고 뒤가 넓으면 부귀를 다 누린다.
□집터 왼쪽으로 물이 흐르면 이를 청룡(靑龍)이라 하고, 오른편에 능선이 있어 장도(長途)가 되었으면 이를 백호(白虎)라 하며, 앞에 못이 있으면 이를 주작(朱雀)이라 하고, 뒷편에 언덕이 있으면 이를 현무(玄武)라 하니, 이런 터전을 일컬어 최귀지(最貴地)라 한다.
□마땅한 집터 : 집터가 궁궐·사찰·신선이 사는 부근에 있으면 그 주인은 익수연령(益壽延齡)하고 가족이 평안하며 재산이 넉넉해진다.
□마땅치 않은 집터 : 신전(神殿), 불후(佛後), 고악(古嶽), 싸움터, 제구(祭坵), 대장간, 방앗간, 기름방, 오래된 무덤, 떨어진 바위의 벼랑, 동망(童罔), 물골이 합치는 곳, 교통이 번잡한 곳, 큰 길가, 절터, 서낭터 등에는 집터 잡는 일을 피해야 한다. 또 큰 고을의 성문(城門)앞이나 옥문(獄門)의 맞은편, 활터에서 과녁이 있는 부근, 흐르는 물결을 바라다보는 자리, 하수구가 모이는 곳, 초목이 나지 않는 자리, 허물어진 절터의 탑 부근, 무덤 근처, 사당에 이웃한 자리, 제방 아래의 자리도 마땅히 피하여야 한다.
□집터의 조사 : 집터의 좋고 나쁨을 지기(志氣)로 살피려면, 먼저 정한 집터, 지표의 부식토를 걷어내고 생 땅을 평정하게 고른 뒤에 한 변이 1.2척 되는 정방형을 설정하고 파내되 깊이도 역시 1.2척으로 한다. 파낸 흙은 잘 부셔서 덩어리 없게 하고, 파낸 구덩이에 다시 메운다. 다지지 않은 채 두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살펴본다. 메운 흙이 푹 꺼져 있으면 좋지 못한 터이고, 만일 그것이 불쑥 솟아 있으면 좋은 터전이라 판단할 수 있다.
□물로써 살피는 방법 : 물은 명당수와 함께 점치되 법(法)을 얻은 것은 길하고 그렇지 못하면 나쁘다. 대체로 물은 양양(洋洋)함을 좋아하며, 유유하여 머물되 가득 찬 연후에야 흘러내림이 마땅하니, 첩첩한 논의 물이 해조(海潮)에 따라 머물고 흐르며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 조당(朝堂)에 합당하고, 또 흘러내리는 물이 이윽히 계속되면 최귀격(最貴格)이라 한다. 만약에 늪에 물이 차서 넘치며, 물줄기에서 옆으로 새거나 터져 물길이 생기거나 물이 빠르게 흘려 내리고 맡거나 땅으로 스며들며 말랐다 젖었다 반복되면 모두 흉하다. 또 흐르는 물소리가 명랑하면 길하나 처연하여 소름끼치면 불길하다.
□수구(水口) : 수구는 주밀함을 숭상하고 물이 고이며 얼른 흘러내리지 않음은 수구에 둥근 둔덕들이 있기 때문인데, 이들을 나성(羅星)이라 부른다. 흙은 돌과 같지 않아서 물길이 닿으면 나성들은 씻기고 깎여서 그 모양이 여러 가지로 형성되는데, 그 중에 기사괴석(奇砂怪石)이 새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하여 그 머리가 물을 거슬러 오를 듯이 역지상향(逆之上向)하고 꼬리가 흐르는 물에 잠긴 듯이 형용되면 대길할 징조이다. 또 나성들이 수구를 바라다보면 좋고, 반대로 집이 있는 쪽을 보면 불길하다. 수구가 집과 가까우면 해롭고 떨어져 있으면 무방하다.
물길 중에 사주(砂洲, 모래 섬)가 있어 수상류(首上流)에 거슬릴 때 주(洲, 섬)가 하나이면 거당(巨當)하고, 주가 셋이면 더욱 좋으며, 주가 수구를 내려다보는 모양이면 가장 길하나, 그 주가 만약 낮으면 길하지 못하다.
□응사(應砂) : 집터 좌우와 앞쪽에 모래언덕(砂丘)이 있어 그 끝이 둥글고 아름다우면 자제(子弟)들이 과거에 급제할 징조이고, 그 형용이 탁필(卓筆)같이 보이면 문귀(文貴)할 것이며, 퇴갑둔군(堆甲屯軍)한 모습이면 무귀(武貴)하게 된다. 반대로 언덕 끝이 급경사이면 도적이 일고, 고탁(孤擢)한즉 스님이 배출될 상이며, 조화(燥火)한 듯이 느껴짐은 온역(瘟疫)과 화재(火災)가 일어날 조짐이다. 그것이 소탕(掃蕩)하면 쟁송(爭訟)할 암시이고, 사태가 나거나 해서 천망(天罔)한다면 작적(作賊)하여 병사(兵死)하게 된다. 이들의 방향은 모두 목성윤도(木星輪圖)에 의하여 추상(推詳)된다.
□집터 앞에 다리를 놓거나 탑[塔婆]을 세우며 서낭[城隍]을 쌓는 일은 모두 방위를 보게 마련이니 조심하여야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바람 부는 방향을 살핌 :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 사입(射入)하면 자손이 낙수(落水)하고, 서북풍은 남녀의 음욕(淫慾)이고, 동북풍은 투군(投軍)하여 낙진(落陣)하고, 간방(艮方)에서 부는 바람은 온황장질(瘟簾瀆疾)이 창궐할 가능성이 있으며, 인방(寅方)의 바람은 호랑이에게 다칠 징조이며, 갑묘(甲卯)의 바람은 길에서 죽거나 다칠 조짐, 을방(乙方)의 바람은 자손의 눈이 멀거나 하는 액운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진손(辰巽)의 바람은 주인이 두풍(頭風)할 것이며, 사병(巳丙)의 바람은 뱀에게 물리거나 하고, 수정(手丁)의 바람은 수재(水災)가 있을 것이며, 미(未)는 노채해소(市?咳嗽)의 병이 들고, 곤(坤)은 공송(公訟)이 있다. 신경(申庚)은 주폭패복(主暴敗覆)하고, 신(辛)은 간고(艱苦)하며, 해임(亥壬)은 가난하게 될 징조이다. 요풍(凹風)이 있어 취사(吹射)한즉 기산(氣散)하고, 바람이 좌입(左入)한즉 장방(長房)이 흠(欠)하고, 우입(右入)한즉 소방(小房)이 흠하니 이들은 모두 피하여야 한다.
2. 집짓기의 준비
집 짓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의 집을 구현하려면 집짓기에 앞서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좋은 재목을 구하고, 좋은 일꾼을 만나고, 알맞은 시기를 택하는 등등....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상형 집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
이상형 집의 구현을 위하여 홍만선 선생도 그의 『산림경제』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조옥(造屋)
□이미 좋은 터를 정하였으면 이내 집을 짓는다. 좋은 날(손 없는 날, 집주인의 명운(命運)에 맞는 날)을 택하고 좋은 재목과 건축재들을 골라잡아 법도에 의하여 공사를 시작한다. 무릇 가사(家舍, 家는 큰집 舍는 작은 집)는 식구의 반을 계산하여 짓는 것이니 커야 24간 정도면 된다. 큰 규모의 집을 꾀하는 이유는 재력과 인력의 동원이 어려울 뿐 아니라 심히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게 하여 자손들을 고스란히 양육할 수 없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큰 집은 무덤에 이르고 작은 집은 좋은 일을 부른다.'고 하였다.
반드시 피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
□집은 대체로 높고 밝게 지어야 한다.
□집 평면의 형상이 '日·月·口·吉'의 글자처럼 한즉 좋고, '工·尸'의 형상이면 불길하다.
□수의 사용에서는 홀수를 씀이 가장 좋다고 하며, 따라서 1간, 3간처럼 정한다. 척수(尺數)나 서까래·도리·보의 규모 등도 모두 홀수로 치목한다.
□배치에서 문·창·벽이 서로 마주보도록 함은 불리하다. 부득이 창을 마주보게 하여야 한다면, 두 짝으로 구성하는 분합문 보다는 외짝문을 설치함이 좋다.
□뒷동산의 툭 불거진 벼랑이 대청 뒤쪽에 있으면 나쁘다. 또 집 한 채만이 홀로 위치하도록 함도 나쁘다. 여러 채의 건물이 배치됨이 좋은데, 사방에 결합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또 새로 지은 집이 기왕에 있던 집에 너무 바싹 다가서는 것도 나쁘다. 더구나 새 집의 규모가 작으면 더욱 나쁘다.
□살던 집의 벽을 뚫고 창(窓)을 내면 재앙이 뒤따른다. 뒷방을 구획하여 마루를 깔면 나쁘나 마루를 구획하여 마루방을 만드는 일은 괜찮다.
□집에 마루만 있고 방이 없음은 가난함을 초래한다.
□사람 사는 집안은 깨끗하고 산뜻해야 한다. 그래야 영기(靈氣)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인격(人格)이 도야된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에게 나쁘며 사람 또한 깨끗하게 처신하지 못하면 불길하다.
□집을 지을 때 집주인은 남의 집 상례(喪禮)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상량 전에는 이를 피하는 것이 속법이다.)
살림집을 꾸미는 법도
□울타리는 집 둘레 전부에 설치되어야 마땅하고, 연못과 수구(水溝)는 높낮이가 분명하고 좌향이 구비되어 있어야 하나, 그것들이 집밖으로 향하면 불리하다.
□만일 선조의 무덤과 집이 같은 터에 자리잡게 될 경우, 집이 무덤 앞쪽에 있어야 마땅하며 무덤이 집 앞에 있으면 안 된다. 무덤은 집의 기운을 빼앗는 고로 무덤을 집 앞에 위치시키면 집의 맥을 끊어 집이 쇠락해진다. 집이나 무덤을 막론하고 뒤편에서 흘러드는 용맥(龍脈)을 억누르는 일은 피해야 한다. 이는 그 생기(生氣)를 빼앗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 다섯가지 허(虛)한 점이 있으면 주인을 가난하게 한다.
1허 : 집이 큰 것에 비해 사람 수가 적은 것
2허 : 대문은 큰데 집이 작은 것
3허 : 담장과 울타리가 불완전한 것
4허 : 우물과 부엌이 적절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
5허 : 집터가 지나치게 넓어 집이 차지한 터전보다 마당이 엄청나게 넓은 것
□집에 다섯가지 실(實)한 점이 있으면 주인은 부귀하게 된다.
1실 : 집이 작은 데 비해 사는 사람이 많은 것
2실 : 집이 크고 문이 작은 것
3실 : 담장이 완전한 것
4실 : 집이 작으며 가축들이 많은 것
5실 : 수구(水溝)가 동남으로 흐르는 것
□부잣집 터의 흙을 몰래 얻어 맑은 물에 개어 대문 위에 바르면 부자가 되고 그 부잣집도 해치지 않는다. 또 쇠똥을 축(丑)의 땅에 묻고 쇠뼈[牛骨]를 동남에 묻으면 좋아진다.
□큰돌을 집 네 귀퉁이에 눌러 두면 재이(災異)가 일어나지 않고, 섣달 그믐날 큰돌 또는 돌기와[石瓦]를 네 귀퉁이에 묻으면서 복숭아씨를 일곱 알 깨뜨리면 길(吉)하다.
□집 지을 때 기둥에 쓰는 나무를 뿌리 쪽이 하늘로 향하도록 거꾸로 쓰면, 사는 사람들을 거꾸로 섰어도 좋다고 자꾸 외쳐야 겨우 길함을 얻을 수 있고, 사는 사람들은 두고두고 온포(溫飽)하여야 겨우 길함을 얻을 수 있다.
경희궁 융복전 설계도 -서궐영건도감의궤
목재
홍만선은 목재 장만하는 일에 관하여도 언급하였다.
□소나무를 벌목하려면 길일을 택해야 나무가 트지 않고 뒤틀리지 않는다.
□소나무를 벌목하는 날은 쾌청한 날이어야 한다. 비가 온다든지 하여 껍질에 물이 먹게 되면 나쁘다. 또 오경 때에 소나무 껍질을 벗기면 흰개미가 살지 못한다.
□집 짓는 재목으로는 소나무를 으뜸으로 친다. 기타 재목들은 좋다고 하더라도 공랑(空廊)을 짓는 데 쓰이는 정도에 불과하다.
□4월과 7월에 날을 받아 벌목하면 벌레가 먹지 아니하고 또한 질기다. 버드나무 잎이 늘어지거나 뽕나무 오디가 떨어질 즈음, 나무에 열매가 열어 마침 익으려 하는 시기를 틈타 나무를 베면 아주 좋다. 이 시기를 놓치고 나무를 베면 물에 한 달 가량 담가 두던가 불에 그을려야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재목은 구부러진 것, 벌레 먹은 것은 피하고, 또 저절로 죽은 나무나 말라비틀어진 것은 쓰지 말 것이며, 벼락 맞은 나무등걸이나 단풍·대추나무 혹은 사당이나 법당건물·관아건물 뜯은 재목, 배에서 뜯어낸 나무는 쓰지 않는다. 서낭당의 신수사목(神樹社木)이나 새가 둥우리를 튼 나무로는 집을 지을 수 없다. 집에 쓸 수 없는 나무를 쓸데없이 벌목함은 불가한 일이다.
□짧은 나무를 이어서 기둥이나 들보·도리에 사용함은 피하여야 한다. 또 나무를 거꾸로 세우는 일도 나쁘다.
□잡목 중에서 밤나무는 초가집에서 기둥 밑둥을 땅에 묻어 오래되어도 냣지 않고 문얼굴을 만들면 도적이 들지 않는다.
□백양(白楊)나무는 재질이 강해서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아 쓸모가 있고, 오동나무는 널빤지를 만들어 차양(遮陽)하는데 쓰면 아주 좋다.
이외에 상수리나무·해(?)나무·가죽나무·칠나무 등 재질이 강한 나무는 잡용(雜用)의 가가(假家)를 짓는 재목으로 쓰인다.
3. 배치에서 지붕까지
*집을 실제로 건축하는 일에 대하여는 실학자들의 고찰이 거의없다. 일터에서 터득한 방법을 간추려 본다. 이제부터는 문헌기록 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현존하는 살림집 사례에 따라 자료를 정리한 내용이다.
(1) 배치법
가난한 살림을 하다 겨우 집을 마련하는 입장에서는 우선 정침(正寢) 한 채라도 번듯하게 짓기를 희망한다. 一자형의 단순한 평면구성이 가장 초보적이다. 그러다 살림 형편이 여유 있게 되면, 단순한 평면의 불편함과 부족함을 보완하는 작업을 하던가 새로 집을 덧붙여 짓던가 한다. 더러는 정침을 ?자형이나 자형으로 편의에 따라 개축하거나, 아니면 옆에 따로 부속 건물을 증축하여 사용의 편의를 도모한다.
증축하는 부분을 어떻게 배열시켜야 쓸모 있고 합리적인가를 궁리함에 따라 배치법이 개발되고 발전하였다. 지역에 따라서는 경제적인 여건을 감안하여 간결한 배치법을 응용하기도 한다.
배치법에는 크게 잇대어 짓는 방식과 넓은 터전에 여러 채의 독립된 집들을 짓는 방식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잇대어 집는 방법은 정침에 이어, 창고와 접객공간, 사랑채를 잇달아 짓는 방법으로 내정(內庭)이 중앙에 넓지 않게 자리하게 하는 ?자형의 집인데 1930년대 도시의 집으로 많이 건축되어 보편화하였다. 이 유형은 날개집, I자, H자 등 다양한 변화를 보이며, 지방에 따라서 황해도나 연평도의 뙈새(뙤새)집, 안동지방의 까치구멍집이나 도투마리집, 울릉도의 투막집, 태백산 북부지역의 정지있는 겹집 등 변화를 가지면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넓은 터전에 여러 채의 독립된 건물을 배치하는 방식은 삼국시대부터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다. 고구려시대의 살림집터전인 즙안현 동태자(東坮子)에서 발굴 조사된 집터에서 여러 채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던 흔적이 드러났다.
그리고 4세기에 완성된 고구려 고분벽화(안악 3호분)를 통해 반빗간, 육고간, 외양간, 우물 등의 부속건물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여러 건물이 배치된 외곽에 담장을 두르고, 담장에 의지하여 행랑채를 지었고(대문과 중문에 행랑채 설치), 필요에 따라 뒷문, 샛문, 편문 등을 설비하기도 하였다.
(2) 평면구성
평면은 공간의 전용(專用)화가 이루어졌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구성이 달라지며, 입식생활이냐 좌식생활이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원초형 집 내부는 간막이 없는 탁 트인 공간이며, 필요에 따라 가방(假房)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따라서 평면은 단순하였고 바닥은 맨바닥이었다. 이는 공간의 전용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인데 필요에 따라 장막(帳幕), 발 등을 이용하여 벽을 대신하였다.
공간의 전용화가 이루어지면서 붙박이 벽에 의해 구분이 명확해지고, 바닥을 이루는 재료는 맨바닥·구들 드린 바닥·마루바닥의 세 종류의 형태로 나타났다.
바닥의 변환에 따라 공간의 넓이와 높이가 책정되기에 이르고 이로 인하여 집의 규격이 설정되었다. 집의 규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을 때 신분제도를 국가질서로 유지하는 국가에서는 집의 규모를 설정하려는 제도를 마련한다. 그 예가 『삼국사기』에 수록되어 있는 신라시대 살림집의 제한령(制限令)이다. 신분에 따라 짓고 살 수 있는 집의 평면 넓이를 규정한 것이다.
백성의 집 15尺×15尺, 오두품 18尺×18尺, 육두품 21尺×21尺, 진골 24尺×24尺.
이런 제한령의 제도는 그 이후 시대로 계승되며 조선시대에도 이행되었는데 조선시대 제한령은 『왕조실록』과 법전(法典)인 『경국대전』에 실려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번의 개정이 있었다. 시대가 거듭될수록 사는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 내용으로 조항이 바뀌어갔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경제발전과 향유공간의 증대를 요구하는 삶에 어느 정도 부응한다는 성향을 보인 것이다.
절제와 검약을 덕목으로 숭상하는 선비사회의 정서가 기반을 이루고 있는 조선시대이긴 해도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충족감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기풍이 진작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때로 사회기강이 해이해진 시기엔 법령을 무시한 대규모 집이 건설되었고 탄핵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자료실의 [건축제도와 법령] 참조)
(3) 기초
□터를 고른 후 주추가 놓일 자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따로 기초를 한다.
기초는 의도적으로 기둥을 받쳐줌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초기의 기초는 땅을 파고 기둥을 묻은 굴주(掘柱)를 돌로 받쳐 주었다.
주초가 놓일 자리에 따로 기초를 하는데 이에는, 돌로 쌓아 초반을 만드는 방식과 입사하여 주초를 떠받게 하는 기법 두 가지가 있다.
입사(立砂)기초는 세계 여러 나라의 고대 유명 건축물,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래의 건축물의 기초였고, 근세까지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방법으로 그 방식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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