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약속된 즐거운 일요일이었다. 교회에 가는 사람들, 친구를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일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푸는 날이었다. 그날 저녁, 미국인들 모두는 혼란에 빠저들어 갔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미국해군전함들을 모두 침몰시켰던 것이다.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충격과 공포는 전국을 휩쓸었고, 대통령은 전쟁을 선포하고, 결국 2차대전으로 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오늘날 젊은 미국인들은 그날의 아픔을 경험하지 못하였으니 뼈저린 느낌이 없을 것이다. 오로지 역사가들이 기술 해 놓은 기록만 접할 뿐이고 살아 남은자들의 증언만 들었을 것이다. 69년전, 1941년 12월 7일을 늘 기억하고, 젊은이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데 게을리 해서는 않된다. 'Tri-City Voice'에 실린글이 한국에서 6.25를 맞으면 늘 들려 오던 말과 너무나 흡사하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항공모함 '아까끼(Akagi) 적성(붉은 성)호'.
진주만공격을 이끌었던 기함(Flagship).
1920년 작은 항모로 발주, 1927년 작전에 투입. 1938년 완전 재건설 현
대화 했다.
영국 항공모함을 카피했다는 설이 있으나 근거가 희박하다.
41300톤. 길이 261m, 폭 32m, 높이 8.9m. 오일 터빈 엔진 4기. 속력 31
노트. 승선인원 1630명.
갑판 활주로 길이 250m, 폭 30.5m, 전폭기 91대 탑재.
항공모함 '가가(Kaga)호 1935년 완전 리노베이션 현대화로 무장. 38200톤, 길이 247m, 폭 32.5m, 높이 9.48m, 속력 28노트. 전폭기 90대 탑재.
1941년 11월 26일 일본에서 출항하여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공격하고 1941년 12월 23일 일본으로 회항.
기함(Flagship)'아까끼'에서 촬영한 영화 필림을 1943년 도꾜에서 발견. 사진으로 발최해서 화면이 흐리다. 항공모함 '가가' 오른쪽은 항공모함 '쭈이가꾸' 주변에 30여척의 전함이 따르고 있다. 잿빛 하늘과 찬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는 북태평양 겨울바다의 악천후 때문에 작전상 논란이 있었으나 강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소로꾸 야마모도 제독 휘하에 항공모함 6척 '아까끼' '가가' 소루유' '히루유' '쇼까꾸' '쭈이가꾸' 그리고 전폭기 420대, 전함, 디스트로이어, 유조선 그외에 잠수함 5척이었다. 보안이 철저해서 1941년 11월 26일 출항해서 일주일이 지나도록 누구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었다. 공격을 닷새 앞둔 12월 2일에서야 기습공격 목표가 진주만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아까끼'항모의 수병 '아이끼 구라모토'는 "드디어 꿈이 실현되게 되었구나" 외치기도 했고, 어떤 병사는 들고다니는 작은 '신또함'을 꺼내 놓고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전투기조종사들은 이마에 일장기가 그려저 있는 헤드밴드를 두루고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맹세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본군 선전용으로 촬영된 영화필림속에서 조종사들이 아무 눈치도 못차리고 떠들고 있는 하와이 라디오방송을 듣고서 즐거워 하고 있다.
1941년 12월 7일 6시 갑판 활주로에서 출격 준비를 하고있다. 사진으로 보아 제2공격조의 출격이다. 준비를 하고있는 전투기는 미쓰비시에서 제작한 전투기 씨리즈중에 A6M2 'Zero' 모델이다. '지로(Zero)' 전투기는 공중전에 강하다. 후일 가미가제에 사용되기도 했다.
전폭기 '발(Val)' 99대가 출격하는 장면. '발'에는 톨피도가 장착되어있다. 뒤에 보이는 항공모함은 '소르유(Soryu)'이다.
'쑈까꾸'항공모함에서 전폭기 'Kate'가 출격하고 있다. '가떼(Kate)'전폭기는 돌피도를 장착한 전폭기이다.
항모 '쇼까꾸(Shokaku)'에서 출격하는 전폭기들을 바라보고 있는 함장. 칠판에는 수행임무가 적혀있다.
항공모함 '아까끼'에서 '지로'전투기가 출격하는 모습. 항공모함들은 진주만으로부터 480Km 떨어진 곳에서 전투기들을 출격시켰다. 비행공격대는 2개조로 나뉘어 제일공격조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제이공격조가 출격하는 것이다. 제일공격조에서는 180대가 출격하였다. '가떼' 27대가 톨피도를 장착하고 축격하여 미해군전함 '오크라호마' '웨스트 버지니아' '네바다' 테네씨'등을 침몰시켰다. High-level bombers, Dive bombers 수십대가 출격했고 전투기 '지로'는 공군기지를 폭격했다. 제2공격조에는 '발(Vals)'전폭기 18대가 톨피도를 장착하고 출격해서 '메릴랜드' '7함대 전함들'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헤레나'등을 공격했다.
일본군 조종사가 첫공격이 시작된지 일분만에 찍은 사진이다. 앞에 보이는 전함 '네바다'가 아직 그대로이고 그 옆에 '아리조나'도 건재하다. 멀리 톨피도에 맞은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기름이 새 나오고 연기가 치 솟고있다. '테네씨'도 '오크라호마'도 맞아 화염이 오르고 있다.
도꾜에 있는 황군본부에서는 해군장성들과 정부요원이 기자회견을 열었고 미국과 전쟁에 돌입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있다.
전폭기 '가떼'가 임무수행하고 돌아와 항모에 착륙하자 선원들이 갑판에 나와 만세를 부르고 있다.
미해군 디스트로이어 '샤(Shaw)'가 폭팔하고 있다. 기습공격에 파손되었지만 배는 그냥 물위에 떠 있었고, 후일 수리 해서 다시 작전에 투입되었다.
포드 섬 해군 공군기지가 화염에 쌓여있고 폭격은 계속 되고 있다. 지상에 있던 군인들이 황급히 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해군사령관 '영'은 일상적인 업무 처리 차 '엔터프라이스'항모에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 오는 중에 아군 총에 날개를 맞고 착륙하기도 했다.
바닷물로 '웨스트 버지니아'의 불을 끄고 있다. 톨피도를 맞은 함선은 대파 되었고 반만 가라 앉았다. 곳바로 '아리조나'에 불도 끄려 했으나 결국 '아리조나'는 침몰되고 말았다.
해군병사가 본부로 달려가고 있다. 일요일 아침, 아직도 많은 병사들은 잠들어 있었다.
톨피도에 피격되 '캘리포니아'에서 "배를 버리고 떠나라"라 방송이 흘러 나오고 병사들이 하선하여 보트로 옮겨 타고 있다. 옆에 있는 '아리조나'에서 흘러 나온 오일이 바다에 띠를 두루고 있다.
'아리조나'가 수시간 만에 침몰하는 모습.
1941년 12월 7일 새벽에 동네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하늘을 메운 비행기들을 바라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미공군의 비행훈련인줄만 알았었다고 한다.
민간인 자원봉사자들이 교통정리에 나섰고, 많은 사람들은 공습에 대피할 곳을 찾아 헤메고 있다.
민간인 의료진들이 호노루루 학교 교정에 환자들을 뉘어놓고 응급치료를 하고 있다. 학교 지붕에는 군에서 대공포를 설치 중이다.
부상당한 사람을 급히 임시로 설치된 학교 응급처치실로 운반하고 있다.
조용한 주택가에도 포탄이 떨어저 불에 타는 가옥에서 집기들을 길가로 꺼내고 있다.
1010독크에 있던 디스트로이어 '카슨'과 '도윈'은 톨피도를 맞아 대파 되었다. 그 덕에 뒤에 있는 '전함 펜실바니아'는 파손이 적은 편이다. ㄱ 공군기지 경납고에는 파괴된 비행기들이 줄비하다.
하와이 원주민들이 원주민 노래를 합창하며 장례를 치루고 있다. 추락한 일본 조종사들도 장례를 치루어 주었는데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었다. 한 여인이 쓸쓸한 무덤앞에 꽃다발을 놓고 "그들도 어떤 어머니의 아들이었다"라고 말했단다.
호노루루에서는 곳곳에 방공호를 파고 공습에 대비했다. 당시에는 모두들 일본군이 상륙해 처들어 오는줄로 믿고 있었다. 군인 가족들은 섬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돌아 갔다. 섬 사람 35000명이 여러가지 예방주사를 맞았다.
계엄령하에서 일본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호노루루 시민들이 대피연습을 하고 있다. 시민 20000명이 자위대를 구성하여 스스로 고향을 지키겠다며 보초를 서기도 했다.
아이들도 전쟁놀이에 열중이다.
하와이가 계엄령하에서 모든 치안은 헌병들이 하고 있었다. 교통위반으로 잡혀 온 여인이 군법재판소에서 헌혈형을 선고받고 있다. 해군병사들의 부인과 주민들이 모여 응급치료때 쓰일 물품들을 만들기도 하고 헌혈하기도 했다. 육군공병대에서는 지하 병원을 만들기도 했다.
'아까끼'항공모함이 진주만공격후 일본으로 돌아 가는데 16일이 걸렸다. 일본 항공모함대가 호노루루에 입힌 피해상황은 다음과 같다.
사망자 부상자 해군 2008명 해군 710명 해병대 109 해병대 69 육군 218 육군 364 민간인 68 민간인 35
함선피해 완전파괴 전함 '아리조나' '오크라호마' Target ship '유타' 디스트로이어 '카신' '다위' 침몰 전함 '웨스트 버지니아' '캘리포니아' '네바다' 어뢰정 '오그라라' 파손 전함 '테테시' '메리랜드' '펜실바니아' 크루스선 '헤레나' '호노루루' '라리후' 디스트로이어 '샤' 그 외에 다수
비행기 손실 육군 96대 대파, 128대 파손 해군 92대 대파, 31대 파손
일본 피해상황 전투기 29대 추락 잠수함 침몰 ..... 원인 불명, 2인용 잠수정 2대 침몰 64명 사망
진주만 공격 몇일뒤 야마모도(맨 앞줄 검은 점)제독과 그의 참모들이 정복으로 갈아 입고 '아까끼'항공모함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부인과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모두가 잘 있다니 기쁘다. 그러나 조심하거라 날씨가 매우 춥구나.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지금은 전시이다. 어떤일이 벌어 질지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것 생각할 여유가 없다. 실로, 이 순간 일본이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하는 매우 결정적인 시점이다."
선전포고 없이 기습공격을 취하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기습공격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연평도 기습공격도 그 와 같다.
|
'늘 함께 할 수 있는 음악과 글 > 우리 역사의 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년전 옛 마포 나루 주변풍경 (0) | 2012.08.28 |
---|---|
화신백화점과 종로통의 역사 (0) | 2012.08.28 |
200년전 아주먼 옛날 서울 풍경 사진) 미국에서 보관중 1803~1903 귀중한 사진 자료 (0) | 2012.08.28 |
일본의 항복 (0) | 2012.08.28 |
박정희 대통령 귀중자료 (0) | 2012.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