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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산에서 보내는 편지중에서=

시인의마을들 2011. 9. 3. 16:18

      바람이 분다,떠나고 싶다 '바람이 분다, 떠나고 싶다,' 그렇게 허공에 습니다 가을 바람이 내 옆에 와 살을 천천히 쓰다듬는 게 느껴집니다 소슬한 가을 바람을 앞세우고 떠나고 싶습니다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렇게 말했지만 그런말이 입에서 저절로 터져나오는 해변으로 가고 싶습니다 내가 살고있는 곳이 사막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떠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모래도시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벗어나고 싶습니다 파도치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숲 우거진 그늘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나무아래 진종일 누워 있고 싶습니다 먹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나무의 그림자나 비릿한 물 냄새를 덮은 채 누워 잠들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에 둘러 싸여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도 모를 때면 벗어나고 싶습니다 빈 몸으로 훌쩍 떠나고 싶습니다 모르는 사람들, 낯선 풍경들 속에 들어가 이방인처럼 떠돌고 싶습니다 참을 수 없을 때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지워져 버리고 싶습니다 내 앞에 놓여있는 것들을 모두 반납하고 홀가분한 몸으로 문을 나오고 싶습니다 =도종환/산에서 보내는 편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