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함께 할 수 있는 음악과 글/행복을 나누는 글

행복한 설을 맞아 온 집안이 두루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시인의마을들 2015. 2. 17. 20:42

민족의 명절 설을 맞이하여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다가오는 새해에도 여러분께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울러 임진년 한해에도 변함 없는 관심 부탁드리고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들 건승 하시길 바랍니다.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까치설날의 유래는 국어학자 서정범 교수가 제시한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한국문화 상징사전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화상징사전의 내용을 요약하면...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이라고도 하는데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설날' 노래가 있기 전에는 까치설이 없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작은설을 가리켜 '아치설', '아찬설'이라고 했습니다. '아치'는 '작은(小)'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아치설의 '아치'의 뜻을 상실하면서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엉뚱하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것의 근거는 음력으로 22일 조금을 남서 다도해 지방에서는 '아치조금'이라 하는데, 경기만 지방에서는 '까치조금'이라 합니다. 이렇게 아치조금이 까치조금으로 바뀌었듯이, 아치설이 까치설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설날'이라는 노래의 작사작곡을 하신 윤극영 선생은 이북출신 서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노래는 1927년작) 이것은 윤극영 선생이 경기도 지방의 언어에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합니다. 

기타 다른주장

1. 까치설날의 설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하여 왕을 해하려 하였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의 인도로 이를 모면하였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그 날을 기념하지만 까치를 기념할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이라 이름 지었다.
            http://www.eculture.co.kr/new_edition/intro/intro_s.asp

2. 朴甲洙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설명
우리의 '설'은 '한설, 한첫날'이라 일러지는 것과 '아찬설, 까치설, 작은설'이라고 일러지는 두 종류가 있다. '한설'은 작은 설에 비해 큰 설이란 뜻으로, '가위(中間)' 가운데 큰 가위를 '한가위(中秋節)'라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첫날'은 일년 열두달 가운데 가장 큰 첫날이란 뜻이다. 이들은 다 같이 '설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첫날'은 '元日', '元旦'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 '아쏅설'이나 '아쏅설날', '까치설'이란 말은 작은 설, 곧 섣달 그믐, 歲暮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쏅'은 '작은(小)'을 뜻하는 말이다. 조카를 '아쏅아韉'이라 하는 경우가 이러한 것이다. '까치설날'의 '까치'는 '아쏅'이 변한 말로, '아쏅'의 어원 의식이 없어지면서 이렇게 변한 것이다.
                    http://www.hanja-edu.com/0201_month/17.htm

기타 설에 대한 참고 자료입니다.

1. 설의 어원
'설'이란 이름의 유래는 3가지 정도로 전해져 온다. 먼저, 새해의 첫날이라 아직 익숙하지 않고 낯설다는 의미로 '낯설다'의 어근인 설에서 전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처음 시작이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어 시간이 흐르면서 선날->설날 이렇게 연음화되었다는 설이 두번째이다. 마지막으로 삼가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명절이고 즐거운 날인 설의 의미와 동떨어진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설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 표현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니, 새해 첫날부터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뜻이 아닌가 한다.

2. 설의 변화
신라시대에 새해아침에 서로 축하를 하며 왕이 군신에게 잔치를 베풀고 해와 달신에게 제사 지내었다는 기록이 있어 설을 쇤 것이 오래됨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가족중심의 설은 [고려사]에 구대속절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고, 조선은 4대 명절의 하나였다. 한때 1895년부터 태양력을 채용하면서 서양의 양력설과 음력설의 논쟁이 되어 일제와 광복 후 국가적인 유도로 양력설을 지정하였었다. 그럼에도, 실제로 대다수가 음력설을 지냄에 따라 1985년 민속의 날로 공휴일이 지정되고 현재는 3일 연휴의 공휴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