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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다양한 장르 품은 ‘팔색조 재즈’

시인의마을들 2012. 8. 8. 01:13

 

 


 

지나, 다양한 장르 품은 ‘팔색조 재즈’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김민기가 ‘봉우리’의 노랫말을 읊조린다. 곧 베이스와 피아노가 눅진한 리듬을 주고 받는다. 코리아나 루이스의 목소리는 여기에 아르앤비의 촉촉함을 섞는다. 이어 디제이 레이더의 랩이 방점을 찍어댄다. 지나(서현아·30)가 재해석한 ‘봉우리’다. 피아니스트이자 작사·작곡 프로듀서를 겸한 그의 첫 앨범 <지나그램>에 담긴 곡이다. 여러 장르를 뒤섞어 옛 곡을 새로운 감수성으로 뽑아내는 솜씨가 예사가 아니다.

 

솔·펑크·아르앤비 등 뒤섞는피아니스트·프로듀서 역할

버클리서 만난 윤상 등 앨범참여

 

“처음엔 김민기씨가 더 이상 리메이크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제가 데모 테이프를 보내고 편지도 썼어요. 이 노래의 감동과 메시지를 새로운 음악에 녹여 소개하려고 한다고. 결국 허락하셨죠. 랩에는 디제이의 해석이, 피아노엔 제 느낌이, 인트로엔 원작자의 메시지가 들어간 거예요. 저는 겸손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렇듯 <지나그램>에 담긴 곡들은 이종교배됐다. 지나가 씨를 뿌린 토양은 재즈다. 대학 간호학과에 다닐 때 그 ‘뻘’에 빠졌다. “5살 때부터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피아노를 쳤어요. 웬만한 팝이나 가요는 듣고 악보로 그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재즈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복사할 수 없는 음악이었죠.” 좀처럼 잡히지 않기에 매력은 강렬했다. 그만큼 결정은 쉬웠다.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 음대에 들어갔다. 당연히 말 안 통하고 실기 실력 딸리는 이중고가 버티고 있었다. “처음엔 영화음악을 전공하려 했는데 장난이 아니었어요. 재즈, 오케스트라 편곡, 영화에 대한 이해까지 있어야 했죠. 그래서 피아노부터 다시 시작한 거예요. 악기를 이해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어요.” 미국 뉴욕대학에서 재즈 피아노와 작곡으로 석사 학위를 딸 때까지 8년이 흘렀다.

 

이 앨범은 늦깎이 뚝심의 기록인 셈이다. 버클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색깔을 보탰다. 윤상, 이상민, 앤소니 비티, 타이거 요코시 등이 그들이다. 지나는 참여 음악인만큼 다양한 영역을 회반죽해 미끈하고 세련된 구조물을 세웠다. 예를 들면, 이라크 전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드리밍’엔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 5개 언어가 들릴락말락 오고 간다. 그 사이로 그의 피아노가 흐른다.

 

“각 나라 친구들에게 전쟁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어요. 메시지 자체를 드러내기보다는 언어가 선율 속에 어우러져 악기 같은 구실을 하길 바랐어요. 그저 사람들이 죽이고 죽어가는 게 싫어서 만든 노래예요.”

 

그의 역할 모델은 조지 듀크다. “훌륭한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예요. 가스펠, 아르앤비, 힙합, 솔, 펑크 모든 장르를 소화하고 노래도 잘하죠.” 그렇게 재즈를 확장해 가며 대중과 놀기 바란다. 연주곡 ‘저스트 라이크 듀크’는 그의 바람이 녹아 있다.

 

피아노, 기타, 색소폰, 드럼의 솔로 연주를 주고 받는 재즈 형식의 곡이되 그 일정한 비트를 따라 슬슬 춤추게 한다. 힙합의 스크래치(판을 손으로 돌려 내는 칙칙 거리는 소리)까지 버무렸다.

 

형식은 다채롭되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리듬은 곡선을 그리지만 노랫말은 직선이다. 김형미의 가냘픈 목소리가 가스펠의 느낌을 담아내는 ‘내게 가르쳐진 삶’에서는 “삶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지지 말라고 북돋운다. “저도 가끔 좌절해요. 스타일은 다르겠지만 테크닉이 뛰어난 사람들 앞에서 때로는 피아노 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어요.” 노랫말은 자신과 타인 모두를 향한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곡 ‘새벽’의 맑은 피아노 선율을 타며 속삭인다. 새로운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새벽을 깨우고 싶습니다.”

 

 

지나(Gina) 1집 Ginagram

 

버클리, NYU출신의 미모의 뮤지션 지나(GINA)의 애시드, 힙합, R&B, 펑크가 결합된 2005년 한국 음악계가 주목하는 최고의 앨범!

 

- 팝음반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세련되고 자유스러운 그루브,
- 흑인 보컬리스트와 힙합 래퍼의 파워풀한 사운드
- 김민기 원곡의 '봉우리'의 재즈펑크적이고 모던한 해석
- 팝적인 세련된 그루브의 등 수록

 

땅 속에 머리를 박고 음악을 듣고 있는 여인이 담긴 의 커버 이미지에서 앨범에 대한 많은 것들을 읽을 수 있다. 커버처럼 지나(GINA)의 음악적 상상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그 상상들이 음악으로 현실화된 결과도 만족스럽다. 굳이 나누자면 애시드 재즈의 범주 안에 포함시킬 수 있겠지만, 그녀는 이 억지스러운 분류를 무색하게 할 만큼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각 악기들은 현대적인 음색을 뿜어내고 있는데, 이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었을 때는 커버의 빛바랜 색처럼 복고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때가 많은데 이는 모두 그녀의 상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치밀함에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한다.

 

최고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앨범은 총 14트랙으로 메워져 있다. 모두 지나의 펜 끝에서 나온 곡들이다. 곡 전체의 느낌을 규정하고 있는 듯한 짧은 인트로가 지나고 2번 트랙 'Here We Go'가 시작된다. 강한 그루브로 드럼이 박차고 나오면 금세 베이스가 이를 받쳐주며 보컬이 시작된다. 3번 트랙 'There's Time'은 보컬이 가장 전면에 드러나는 곡이다. 코러스를 포함한 보컬 파트 편곡이 매우 뛰어나다. 여백이 많은 것 같지만 귀 기울이면 전체적인 사운드가 꽉 차게 다가오는데, 여기서 편곡의 치밀함이 드러난다. 그녀의 B3 연주는 곡을 절정으로 이끄는 가이드가 되고 있다.

 

5번 트랙은 김민기의 '봉우리'가 모티브가 된 곡이다. 4번 트랙은 이 곡을 위한 인트로다. 스스로 가장 애착이 가는 곡 가운데 하나로 꼽은 '봉우리'는 의도와 결과를 정확하게 일치시킨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헛된 인생 목표와 겸손”을 배우게 하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여러 상충적인 요소를 한 곡에 집어넣는 실험을 했고, 이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Awesome God'이라는 가스펠에서 영감을 받아 쓴 6번 트랙 'Awesome G' 역시 그녀의 자식 같은 곡인데, 그녀의 독특한 연주 습관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악기의 솔로에서는 엄청난 에너지로 이 악기의 연주가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도, 자신의 솔로에서는 음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절제된 느낌으로 연주한다. 그녀의 배려와 겸손을 확인할 수 있는 피아노 솔로가 일품이다. 사랑을 생각하며 썼다는 7번 'Blue Eyes'는 팝의 분위기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곡이다. 지나(GINA)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건조한 느낌으로 건반을 눌렀다면, 이 곡은 감성적인 터치로 곡의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스무드 재즈의 감미로운 분위기는 이내 8번 'Don't Give In'에서 힙합 그루브로 전환된다. 랩과 보컬이 흑인음악의 끈적끈적함을 표현하고 있다면, 그녀는 다소 냉소적인 연주로 화답하며 묘한 느낌을 이끌어 낸다. 이어 실린 'Dreaming'이라는 곡은 전쟁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전장의 초연함을 표현하는 듯한 뮤트 트럼펫 소리, 여러 언어가 동시에 혼란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간주, 키스 재릿의 솔로를 듣는 것 같은 그녀의 피아노 터치….

 

모두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의도한 바를 달성하고 있다. 숙연함을 느낄 새도 없이 현란한 기교가 돋보이는 스크래칭이 시작된다. 10번 트랙 'Just Like Duke'는 그녀가 가장 존경한다는, 그래서 꼭 따라잡고 싶은 대상인 조지 듀크를 그리며 쓴 곡으로,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사운드를 사이좋게 화해시키는 그녀의 재치가 돋보인다.

 

그녀는 너무나 편안하게 '진화한 애시드 재즈'를 만들었다. 작,편곡, 연주, 사이드 맨들의 연주, 레코딩과 믹싱 등 앨범의 완성도도 매우 높다. 너무나 미국적이지도 않고 한국적이지도 않은 그녀의 음악은 오히려 우리네 감성에 더 맞는 듯하다. 너무나 강하지도 않고 유하지도 않은, 너무나 거칠지도 않고 섬세하지도 않은 지나(GINA)의 음악은 겸손을 가치로 여기는 그녀의 삶에서 우러나는 것일 테다. 은 침체돼 있는 한국 재즈계에 어떤 도전 같은 앨범으로, 우리 재즈의 미래를 예시하는 수작임이 틀림없다.

 

참여뮤지션 : 윤상, 이상민(긱스), 토시오 타나카, 타이거 오코시, 샘 트링거, 랩 - 브라이언 엘리스, 보컬 - 코리아나 루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