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 ♧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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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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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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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 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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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성 이여도 좋고
남성 이여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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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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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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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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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했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 두곳,
한 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 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길
자산이 되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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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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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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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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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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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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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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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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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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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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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 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 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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