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의 기원 고분벽화에도 잡상이 그려져 있는 건물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삼국시대와 고려 이전의 궁전건물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용 시기를 고려 이전으로 보기는 곤란하다. 서울 숭례문崇禮門의 잡상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들어와 잡상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궁전건물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고 그 후에 중건된 것이다. 화재를 면하려면 화인火因을 없애는 한편 벽사적 내지는 주술적인 방편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잡상장에 대한 법전을 보면 조선경국대전에 잡상장은 와서의 소속으로 4명을 두었으며 와장은 40명으로 직종을 구분하였다. 잡상은 모든 기와지붕위에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전건물과 궁궐과 관련이 있는 건물에 한정된다. 또한 궁전건물 중에서도 양성으로 되어 있는 내림마루와 귀마루에만 배치되고 기와로 마감된 지붕마루에는 설치하지 아니하였다. 잡상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로는 궁궐의 정전, 왕의 침전, 궁궐의 정문, 도성의 성문, 궁궐안의 누정, 왕릉 왕비릉의 정자각, 종묘, 성균관, 동묘 등에 한정되며 민가, 사원, 서원, 지방향교 등에는 잡상을 설치하지 아니하였다.
잡상의 형상과 의미
건축은 기능적인 면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고에 의한 장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암막새 수막새의 와당에 상징적인 조형이 생겨나고 보다 더 높은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 취두, 치미, 용두, 잡상 등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취두와 치미는 큰 건물의 용마루 양끝에 설치하며 용두는 취두나 치미를 설치하지 않은 작은 건물의 용마루와 취두를 설치한 용마루에서 수직으로 내려온 내림마루에 설치하였다. 취두鷲頭는 독수리의 머리형상이며 치미 尾는 솔개의 꼬리형상이다. 이 두 날짐승은 하늘을 나는 새 가운데 가장 강하고 힘찬 것이다. 건물에서 지붕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하늘을 나는 새 중에 가장 강한 독수리나 솔개를 건물의 용마루에 놓음으로써 모든 재앙과 악귀를 막아줄 것이라는 벽사적僻邪約 내지는 주술적呪術的인 뜻이 담겨 있으며 왕권의 상징이 되었다. 중국 송대宋代에 편찬된 영조법식營造法式에 치미 尾에 관한 글이 있다.“백양전柏梁殿이 화재를 당한 뒤에 월越의 무당이 말하기를 바다 속에 어규(魚 규:뿔없는 용)가 있는데 꼬리로 솔개처럼 물결을 치니 곧 비가 내렸다고 하였다. 그 형상을 지붕에 만들어서 불의 재화를 진압하였다..-중략- 담빈록譯賓錄에 동해東海에 어규魚 가 있어 꼬리로 솔개와 같이 물결을 치니 곧 비가 내려서 드디어 그 형상을 옥척(屋脊:용마루)에 베풀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목조건물은 화재가 가장 두려웠고 화재예방을 위한 주술적呪術的인 뜻으로 치미를 용마루에 올려놓았던 것이 취두로 바뀌고 이러한 연유에서 잡상도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잡상의 의미
[자료의 근거] 지은이 :마에노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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