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마을들 2013. 1. 5. 12:19

 
겨울노래 11곡 모음
 
 
    눈의 노래
 
 
 
사랑하였습니다
그대의 소리 없는 음성을
희디 흰 얼굴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대 사랑은 늘 내게서 비껴갔지만
다시 운명처럼 스쳐오곤 하였습니다
기억에서 망각으로 이르는 공간을
겹겹이 작은 심장들의 고동으로
가득 채우곤 하였습니다
 
 
그대 부서져 내리고 있습니다
끝끝내 내게 허락하지 않았던
아득한 저 미로를 헤맬지라도
돌아 나올 길이 깊게 덮이더라도
그대 모습과 내 그리움의 잔상이 겹쳐진
첫 발자국에서 마지막 발자국까지
나는 그대 속으로 들어갑니다
 
 
아아, 그대가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의 오랜 사랑은 이제
입술이 갈라지고 볼이 터져 가는데
손길은 허공을 저을 뿐
그대 얼굴을 감쌀 수 없습니다
그대 어깨에 닿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날이 지나야
그대 더운 입김 지워질까요
 
 
슬픔보다 깊은 아련함이
소리 없는 노래로 맺혀 내립니다
고개 들어 깜박이는 속눈썹에
참아도 살짝 비치는 눈물 위에
아직 식지 않은 모든 흔적들에
하얀 그대 내립니다